얼마 전 사돈어른의 장례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사돈어른의 직계 유가족에게 상황을 전달드리고, 그들의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현실'이라는 숙제가 주어지더군요. 바로 고인이 수십 년간 온기를 채우며 사셨던 집을 정리하는 일이었습니다.
오늘은 직계 유가족을 대리해서 퇴거 청소를 돕고 왔습니다. 간략한 장례절차를 위해 이민을 갔다가 잠시 귀국한 직계 유가족들과 고인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단순히 짐을 정리하는 것 이상의 많은 생각이 교차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1. 짐 속에 새겨진 수십 년의 세월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고인의 시간이 그대로 멈춰 있었습니다. 정정하신 분이 낙상으로 병원에 입원하시기 전까지 직접 사용하고 관리하던 서랍 구석구석, 찬장 깊숙한 곳까지 수십 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물건들이 가득하더군요.
요즘은 보기 힘든 오래된 가전제품부터, 손때 묻은 작은 소품들까지... 물건 하나하나에 깃든 이야기를 상상하다 보니 청소 속도가 더뎌지곤 했습니다.


요즘 도심 가정에서는 보기 힘든 장농이 수십년의 세월 동안 표면의 윤기까지 유지하면서 안방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저를 가장 감상에 젖게 만들었던건 방 한켠에 보관된 비디오테이프들이었습니다.
라벨을 보니 이민을 가서 생활하며 마주치는 주요 순간들을 기록해서 그때그때 할머니에게 보낸 영상편지였습니다. 제 사촌동생이자 고인의 손자되는 아이의 성장과정도 담겨있었습니다. 테이프가 수백개는 되어야 했을 것 같은데 왜 스무개 남짓한 테이프만 있을까 의아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우리 현대사가 녹아들어있습니다. 비디오테이프의 시대가 저물고 잠깐의 CD, DVD 시대를 거쳐 아예 영상통화를 거치며 테이프에 녹화를해서 국제우편을 보낼 필요가 없어졌던 것입니다.
누군가의 일생이 담긴 공간을 비워낸다는 건, 단순히 '버리는 일'이 아니라 그분의 역사를 마주하는 일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2. 현실적인 벽, 까다로운 분리수거
감상에 젖어 있을 틈도 없이 현실적인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수십 년 치 짐을 정리하다 보니 일반 쓰레기로는 도저히 처리할 수 없는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입니다.
특히 해당 아파트 단지의 분리수거 규칙이 꽤나 엄격했는데요.
- 재질이 혼합된 물건들을 일일이 분해하고
- 단지 내 정해진 요일과 배출 방식에 맞춰 분류하는 과정이 정말 '노동' 그 자체였습니다. 환경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지만, 대량의 짐을 정리하는 입장에서는 진땀이 나는 작업이더군요.

우선은 비교적 최근(1년 이내)에 사용하시라고 배송하고 조립해드린 선반이 상태가 너무 좋아서 버리기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나눔을 하기로 결정하고 해체해서 따로 보관을 해두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일반쓰레기로 버릴 수 있는 물건들과 아닌것들을 골라내는 거대한 사투가 있었습니다.
아래 사진들은 일반쓰레기로 버리면 안되는 것들입니다.
진짜 박제인지 모형인지 모를 거북, 대형 여행가방 등 수없이 많은 물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목공예품 같은 경우가 애매했는데, 경비실 답변으로는 부피가 작고 쉽게 부서질 수 있다면 작게 부수어 일반 쓰레기로 버려도 되지만 부피가 크고 단단하면 신고해서 버려야 된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3. 아직 남겨진 숙제들 (대형 폐기물과 사기그릇)
하루 꼬박 매달렸지만 결국 다 해결하지 못한 것들도 있습니다. 대형 가구와 가전, 그리고 사돈어른이 아끼시던 목공예품과 수많은 사기그릇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이런 물건들은 버리는 방법이 따로 정해져 있더라고요.
- 가구/가전: 대형 폐기물 스티커 부착 또는 수거 업체 예약 필요
- 사기그릇/목공예품: 불연성 폐기물 전용 마대(특수 규격 봉투) 구매 및 배출


저같은 경우, 깨진 컵을 분리수거장에 내다놓는 정도의 분리수거만 해봤지 도자기나 사기그릇, 자기 주전자 이런 폐기물들이 버려지는 절차를 몰라서 급하게 물어보니 "마대"자루에 담아 버리면 된다는 말을 듣고 근처 철물점에서 마대자루를 사서 아래 사진처럼 도기와 자기 종류를 담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버리면 안된답니다.
'불연성 쓰레기봉투' 또는 '타지 않는 쓰레기 전용마대'에 담아서 배출해야 한다는 설명을 급한 마음에 그냥 마대자루를 사서 담은 것이었죠. 다음에 다시 가서 처리를 해야겠습니다.



일반 종량제봉투 20리터와 75리터 한 묶음씩 준비했는데 수십년의 세월을 정리하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전문적인 처리가 필요한 품목들이 있어서 다음을 기약하며 무거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습니다.
"사람이 머물다 간 자리를 정리하는 일은, 그 사람에 대한 마지막 예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비슷한 상황을 앞두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미리 해당 지역의 대형 폐기물 배출 규정과 불연성 마대 판매처를 꼭 확인하시길 권해드립니다. 몸은 고되었지만, 사돈어른의 마지막 길을 정리해 드릴 수 있어 마음 한구석은 오히려 차분해지는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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